십자가를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얼마나 큰 희생을 치르셨는지 느껴져요. 상상할 수도 없는, 그 어떤 사랑보다 위대한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죠. 받을 자격도 없는 우리에게 용서를 선물하신 거예요. 죄로 가득 찬 세상에,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랑이 십자가를 통해 드러난 거죠.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십자가는 우리에게 희망을 줘요.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춰주고,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통해 위로를 건네죠. 힘들 때 십자가를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십자가 앞에 서면 내 삶을 돌아보게 돼요. 내가 하는 행동들이 과연 의미 있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죠.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우리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는 그 은혜를 깊이 생각하게 돼요. 십자가를 통해 우리는 용서받고, 창조주와 화해할 수 있어요.
예수님처럼 우리도 희생적인 삶을 살도록 십자가는 우리에게 도전을 던져요. 나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세상에 사랑과 긍휼의 메시지를 전하도록 이끌어주죠.
십자가를 묵상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소망해요. 주변 사람들에게 동정심과 용서, 그리고 사랑을 베풀며 살고 싶어요. 매 순간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길을 따라갈 힘을 얻게 해 주세요. 변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이 항상 나와 함께한다는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 세상이 나에 대하여 죽었고 나도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몸소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를 위해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매맞고 상처를 입으심으로 여러분이 낫게 된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므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기쁜 소식을 전파하라고 나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지혜로운 말로 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성경에도 “나무에 달린 사람마다 저주를 받은 자입니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고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자기 생명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나를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는 사람은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슨 유익이 있겠느냐? 사람이 자기 생명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그리고 우리 믿음의 근원이시며 우리 믿음을 완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은 장차 누릴 기쁨을 위하여 부끄러움과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셨으며 지금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없애려고 단번에 희생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때에는 죄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두 번째 나타나실 것입니다.
우리의 타락한 성품 때문에 율법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우리의 죄값을 그에게 담당시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강하고 위대한 자들의 영예를 그에게 주겠다. 그는 기꺼이 자기 생명을 바쳐 범죄자처럼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그들이 용서받도록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피를 죄에서 구원하는 제물로 삼으시고 누구든지 그분을 믿으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참으심으로 그냥 지나쳐왔던 과거의 모든 죄를
나는 내가 받은 가장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경 말씀대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또 무엇 때문에 우리가 끊임없는 위험을 당해야 합니까? 형제 여러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내가 여러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만큼 확실하게 말하지만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내가 만일 인간적인 생각으로 에베소에서 사나운 짐승들과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었겠습니까? 만일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텐데 먹고 마시자”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속지 마십시오. 악한 친구와 사귀면 좋은 버릇마저 그르치게 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기에 내가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런 말을 합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떤 몸을 갖게 됩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여러분이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뿌리는 것은 형체를 갖춘 식물이 아니라 밀이나 그 밖의 다른 씨앗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자기가 원하시는 대로 그 씨앗 하나하나에 본래의 형체를 주십니다. 육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육체와 짐승의 육체와 새의 육체와 물고기의 육체가 각각 다릅니다. 무덤에 묻히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겠지만 여러분의 조상들이 전해 준 무가치한 생활 방식에서 여러분이 해방된 것은 은이나 금과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흠과 티가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약한 가운데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역시 약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며 여러분의 문제를 처리할 것입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님을 통해 흠 없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에서 어찌 여러분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습니까?
오후 3시쯤에 예수님은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고 외치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 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다시는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을 위해 살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자기를 바쳐 하나님께 향기로운 예물과 희생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그분을 본받아 사랑으로 생활하십시오.
“내가 다윗의 후손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혜와 기도의 영을 부어 주겠다. 그들은 자기들이 찔러 죽인 자를 바라보고 외아들을 위해 슬퍼하듯이 슬퍼할 것이며 맏아들을 잃은 사람처럼 통곡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천사들보다 조금 낮아지셨다가 죽음을 당하시므로 이제는 영광과 존귀를 받으신 예수님을 보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맛보려고 하셨습니다.
감사 기도를 드리고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또 저녁을 잡수신 후에 마찬가지로 잔을 들고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계약이다.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한 아기가 태어났으니 우리에게 주신 아들이다. 그가 우리의 통치자가 되실 것이니 그 이름은 ‘위대한 스승’,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히 계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 이라 하리라.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해 가난하게 되신 것은 그분의 가난을 통해서 여러분이 부요해지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조금 더 나아가 땅에 엎드려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할 수만 있으면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죽음을 통해 여러분과 화해하셨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 앞에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제사장들처럼 먼저 자기 죄를 위해 제사를 드리고 나서 백성의 죄를 위해 제사드리는 일을 날마다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바쳐서 단번에 그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